마흔 해를 노래한 전설, 그의 마지막 무대 뒤엔 무엇이 있었나
2011년 봄, 한 남자가 경연 형식의 음악 프로그램 무대에 섰습니다.
이미 20년 넘게 노래해온 사람이었습니다.
누구와 경쟁할 이유도, 새삼 평가받을 이유도 없어 보였죠.
그런데 그는 그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유는 한참 뒤에야 알려졌습니다.
아내의 치료비였습니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 마흔 해 전의 시작
그 남자는 가수 임재범입니다.
1986년 밴드 시나위의 1집 '크게 라디오를 켜고'로 데뷔했습니다.
이후 외인부대와 아시아나를 거쳤고, 1991년 솔로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이 밤이 지나면', '너를 위해', '고해', '비상'이 차례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목소리 하나로 한 시대를 관통한 사람이었죠.
하지만 무대 밖의 삶은 노래만큼 매끄럽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방송사 아나운서로 이름을 알린 임택근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린 시절 고아원에 맡겨졌다가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배우 손지창이 그의 이복동생이라는 사실은 2011년 방송에서 본인 입으로 처음 공개됐습니다.
그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러 본 적이 없다.
아직도 어색하게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동생을 처음 만난 순간에 대해서도 담담히 털어놨습니다.
"지창이는 마음의 한이 깊어서 나까지 미워하는 것 같았다"
"뮤지컬을 접었습니다"… 하드록 카페에서 만난 사람
임재범의 아내는 뮤지컬 배우 송남영입니다.
두 사람은 1998년 뮤지컬 '하드록 카페'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약 3년의 열애 끝에 2001년 2월 결혼했습니다.
송남영은 서울예대 연극과를 나와 '명성황후', '페임', '겨울나그네' 무대에 올랐던 실력파였습니다.
그런데 결혼 이후 그녀는 무대를 내려놓았습니다.
남편과 딸을 뒷바라지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그 무렵 그의 삶은 바닥에 가까웠습니다.
훗날 그는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우울증에 빠져 6~7년간 무기력한 남편으로 살았는데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다.
당시 수입도 저작권료 100만원이 다였다"
한 달에 들어오는 돈이 백만 원 남짓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노래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그대로였지만, 생활은 그렇지 못했던 겁니다.
"결혼 10주년에 암 진단"… 그가 다시 무대에 선 이유
2011년, 임재범은 자신의 팬카페에 긴 글 하나를 올렸습니다.
"제 아내 송남영, 저와의 결혼 10주년 기념일을 즈음해 병원서 갑상선암을 진단받고 갑상선암 제거를 했고, 간, 위로 전이됐다는 추가 진단을 받았다"
결혼 10주년을 축하해야 할 시기에 받아든 진단이었습니다.
그는 같은 글에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육체의 병보다는 아내가 무척 외롭고 힘들어할 때, 한 여인의 남자로 남편으로 많이 아프고 힘이 든다"
그가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도 아내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그의 무대는 매주 화제가 됐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목소리에 열광했죠.
정작 본인은 인터뷰 도중 눈물을 보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내 병은 내가 키운 것일 수 있다"
자신의 무기력했던 시간이 아내를 병들게 했다는 자책이었습니다.
2013년 방송에서도 그 마음은 그대로였습니다.
"제 가수 활동 때문에 뮤지컬을 포기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만 가득하다"
저는 이 대목에서 한참을 멈췄습니다.
화면 속에서 포효하던 사람이, 사실은 병실을 지키던 한 남편이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습니다.
"7년을 무대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남은 사람의 시간
2017년 6월 12일, 송남영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45세였습니다.
임재범은 그 후 모든 활동을 멈췄습니다.
2020년에는 아버지 임택근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상주 자리를 지켰고, 이복동생 손지창도 빈소를 함께 지켰습니다.
무대로 돌아온 것은 2022년이었습니다.
아내를 떠나보낸 지 약 7년 만이었죠.
복귀 이후 그는 딸 이야기를 자주 꺼냈습니다.
"엄마가 떠나고 많이 외롭고 힘들었을 거다"
"딸이 아빠 힘들게 안 하려고 자질구레한 얘기들을 안 했다.
혼자 삭히는 모습을 봤을 때 너무 미안했다"
엄마 없이 청소년기를 보낸 딸에게 미안하다는 말이었습니다.
"가장 좋은 때 스스로 걸어 나온다"… 마흔 해의 마지막 인사
2026년 1월 4일, 임재범은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데뷔 40주년을 맞은 바로 그 해였습니다.
"무대에 서면 여전히 심장은 뜨겁지만 그 뜨거움만으로 다 감당하기엔 제가 가진 것들이 하나둘 제 손을 떠나고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많은 이들이 건강이나 목소리를 이유로 짐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인생에서 음악 다음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꼽은 것은 딸이었습니다.
방송에서 그는 딸에게 영상 편지를 보냈습니다.
"아빠가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것도 너였고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도 너를 보고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결정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가장 좋은 때 스스로 걸어 나오는 것이 내 자존심"
마지막 무대는 2026년 5월 17일이었습니다.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40주년 투어 '나는 임재범이다'의 최종 공연이었습니다.
오프닝곡은 '내가 견뎌온 날들'과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습니다.
후반부에는 허리 통증을 안고도 무대를 끝까지 마쳤습니다.
객석 곳곳에서는 "수고했다"는 외침과 눈물이 함께 터졌습니다.
그는 관객과 스태프를 향해 허리를 90도로 숙인 뒤 무대를 떠났습니다.
앞으로의 삶을 묻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보통 사람의 삶을 살 거다"
마흔 해를 포효하던 사람이 마지막에 지킨 것은 노래가 아니라 곁에 남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인사도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저는 떠나지만 제 음악은 여전히 여러분 곁에 다정하게 남아있을 것"
이제는 무대 밖에서 평온한 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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