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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이름, 영원한 '눈물의 여왕'

대한민국 영화계 1세대 트로이카이자 당대 온 국민을 울렸던 영원한 '눈물의 여왕'이 있습니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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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따라간 오디션에서 이만희 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 '흑맥'으로 화려하게 데뷔했고, 1968년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이 대흥행을 기록하며 최고의 스타 반열에 올랐습니다.

데뷔 후 단 6년 동안 218편의 작품을 찍을 정도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중, 한국일보 부사장과의 결혼과 함께 미련 없이 스크린을 떠나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결혼 후 가정을 지키며 살아가던 중 남편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으나 백상재단 이사장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습니다.

윤정희, 남정임과 트로이카 중 유일하게 남아 곱게 나이 든 사람만의 품위를 보여주며 우리 기억 속에 머물러 있는 배우 문희 씨의 이야기입니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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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따라 강남 간 탤런트, 배우가 되다

본명은 이순임, 서울에서 오남 일녀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위로 오빠만 다섯이었으니, 집안의 귀염을 독차지하며 자랐습니다.

사실 배우가 되겠다는 큰 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1965년, 서라벌예대에 다니던 시절 친구를 따라 방송사 탤런트 시험을 보러 갔을 뿐이었습니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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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카메라 테스트를 지켜보던 영화계 사람들의 눈이 한 얼굴에 멈췄습니다.

이만희 감독 쪽의 눈에 든 문희는 그 길로 영화 "흑맥"에 발탁되어 데뷔합니다.

친구를 따라간 사람이 오히려 스타가 된, 영화 같은 시작이었습니다.

그 시절 문희의 가장 큰 무기는 눈이었습니다.

함께 촬영하던 남자 배우들이 그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습니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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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배우 엄앵란도 촬영장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고 합니다.

늦었지만 정상에 섰다: '트로이카'의 탄생

시작이 화려했던 것은 아닙니다.

같은 시기 데뷔한 윤정희와 남정임이 첫 작품부터 크게 터진 것과 달리, 문희의 이름은 더디게 알려졌습니다.

1966년 "초우", 1967년 "원점"을 지나며 조금씩 눈도장을 찍어 갔습니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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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68년 여름, 인생을 바꾼 작품이 찾아옵니다.

바로 "미워도 다시 한번"이었습니다.

서울의 한 극장에서만 삼십칠만 명이 몰렸습니다.

당시 최고 흥행작으로 꼽히던 "성춘향"의 기록마저 갈아치운 대사건이었습니다.

윤정희도, 남정임도 세우지 못한 기록이었습니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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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편으로 문희는 마침내 두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됩니다.

윤정희, 남정임, 문희. 세 사람을 묶어 부르던 이름이 바로 1세대 트로이카였습니다.

문희가 맡은 배역은 대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관객의 눈물샘을 쥐고 흔든다 하여 붙은 별명이 바로 "눈물의 여왕"이었습니다.

공식 기록만 따져도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이백열여덟 편에 이릅니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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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이던 1968년 한 해에만 마흔 편을 찍었을 정도였습니다.

결혼식장이 곧 은퇴식이 된 사연

그렇게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무렵이었습니다.

1971년, 문희는 모두를 놀라게 한 결정을 내립니다.

상대는 당시 한국일보 부사장이던 장강재였습니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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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제작하는 인연으로 만난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고, 결국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재벌가의 아들과 백년가약을 맺은 최초의 연예인이었습니다.

문희의 결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같은 시절 화제였던 신성일과 엄앵란의 결혼식과 나란히, 세기의 결혼식으로 오래 회자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결혼이 곧 은퇴 선언이었다는 점입니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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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마흔 편을 찍던, 가장 잘나가던 배우가 결혼과 동시에 스크린을 떠났습니다.

데뷔한 지 겨우 육 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1973년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마지막으로, 문희는 다시 카메라 앞에 서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팬들이 아쉬워했지만, 그녀의 선택에는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대목이 참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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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화려한 순간에 미련 없이 내려놓는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화목했던 그 자리에, 이별이 찾아오다

결혼 후 문희의 삶은 겉으로 잔잔했습니다.

이렇다 할 구설 한 번 없이, 조용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배우 대신 한 집안의 안주인으로, 또 어머니로 살아간 세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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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신데렐라 같던 이야기에도 시련은 비켜 가지 않았습니다.

1993년, 남편 장강재가 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부부의 연을 맺은 지 스물두 해 만의 이별이었습니다.

남편을 떠나보낸 뒤에도 문희는 자신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한때 언론사 경영에 몸담기도 했고, 지금은 백상재단을 이끄는 이사장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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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월이 흐른 지금, 문희에게는 또 하나의 이름이 붙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트로이카 세 사람 가운데, 홀로 남은 사람.

윤정희도, 남정임도 곁을 떠난 지금, 그 시절을 기억하는 마지막 얼굴이 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 품위 있는 그녀

이따금 여성지 화보로 비치는 모습에는, 곱게 나이 든 사람만이 지닌 품위가 배어 있습니다.

가장 빛날 때 스스로 물러설 줄 알았고, 화면 밖에서도 흐트러지지 않았던 사람.

한 시대를 울렸던 그 눈망울이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물러 주기를 바랍니다.